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FC 바이에른 뮌헨/관련 인물 (문단 편집) ==== 2000년대 ==== * '''[[메멧 숄]]''' 92년 여름 바이에른 뮌헨에 이적한 후 은퇴할 때까지 무려 15년간 바이에른의 No.7로 활약하며 영광의 시대를 지탱했던 전설적인 플레이메이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터키계 독일인인 숄은 [[올리버 칸]]과 함께 개인 최다 [[분데스리가]] 우승(8회)를 기록했으며, 98년부터 3시즌 연속 리가 제패에 98-99 [[UEFA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 2000-01 챔스 우승 등 바이에른의 제 2의 전성기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으며, 독일의 [[UEFA 유로 1996]] 우승의 주역이기도 했다.[* 칼루스헤 유스팀에서 데뷔해 바이에른으로 이적해 레전드로 성장했다는것도 나름 [[올리버 칸]]과 걸어온 길이 흡사하다. 포지션만 다를뿐.] 메멧 숄은 바이에른 뮌헨에서 통산 기록은 334경기 출전 87골을 기록했으며 2007년 [[프랑크 리베리]]에게 등번호 7번을 넘겨주고 감동적인 현역 은퇴식을 가지고 물러났다. 이후 바이에른 뮌헨 U-13팀 코치를 거쳐 현재는 바이에른 뮌헨 2팀의 감독으로 활약중이다. 2005년에는 66,000명의 바이에른 팬들이 선정한 바이에른 뮌헨 올타임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 '''[[지오반니 에우베르]]'''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 [[분데스리가]]를 평정한 브라질리언 스트라이커. 슈바벤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1997년 여름 바이에른으로 이적한 그는 분데스리가 통산 __256경기 133골__을 기록해 '''분데스리가 외국인 최다 득점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바이에른의 주전스트라이커로 6시즌간 맹활약하며 169경기 출전 92골을 득점, 4회의 리그 우승과 3회의 [[DFB-포칼]] 우승, 각각 1회의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과 준우승을 견인했으며, 2002-03시즌에는 24골로 분데스리가 득점왕에 오르기도 했다. 이후 [[올랭피크 리옹]]으로 이적해 말년에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크루제이루 EC]] 등을 떠돌다가 부상과 부친상때문에 은퇴했으나 현재 바이에른 뮌헨의 스카우트로 활약하고 있다. * '''[[올리버 칸]]''' 전차군단과 바이에른의 골문을 14년간 철통같이 지킨 전설의 명수문장. [[잔루이지 부폰]], [[페테르 슈마이켈]] 등과 쌍벽을 이루는 거물 골키퍼로 평가받고 있으며,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골키퍼를 논할때 빠지지 않고 언급된다. 짐승같은 피지컬과 동물적인 반사신경, 필드를 장악하는 카리스마로 바이에른의 최후방을 든든히 지키며 1994년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해 14시즌간 429경기에 출장해 8회의 [[분데스리가]] 우승, 6회의 [[DFB-포칼]] 우승, 각각 1회의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및 준우승을 기록했으며, 2002년부터는 은퇴 전까지 6년간 바이에른의 주장을 역임했다. 특히 칸은 2000-01 챔피언스 리그에서 8강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4강 [[레알 마드리드 CF]]전에서 신들린 선방쇼를 보여주며 결승행을 이끌었고, [[발렌시아 CF]]와의 결승전 승부차기에서 '''[[페널티 킥]]을 3개나 막아내는''' 괴력을 보여주며 바이에른의 25년만의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이듬해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주전선수들의 대거 부상으로 역대 최약체로 평가받은, '녹슨 전차군단'이라는 비아냥을 들었던 독일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신들린 선방을 연발하며 결승행을 이끌었다. 결승까지 6경기를 치르는동안 칸은 단 1실점만을 기록했으며, 결승전에서는 [[카푸]]와의 충돌로 손가락이 삐는 부상을 당했음에도 끝까지 경기해 임했으나 치명적인 캐칭미스로 [[호나우두]]에게 멀티골을 허용하는 등 팀의 2대0 패배를 막지 못했으나 그의 활약은 대회 전체를 통틀어서 단연 최고였다는데에는 이견이 없었다. 칸은 2002 월드컵 [[FIFA 월드컵 골든글러브|야신상]]을 수상했으며, 골키퍼로써는 '''월드컵 역사상 최초로 골키퍼로써 대회 골든볼(MVP)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는 [[잔루이지 부폰]], [[페트르 체흐]], [[이케르 카시야스]], 그리고 바이에른과 대표팀 후배 [[마누엘 노이어]]는 물론이요, [[레프 야신]]도 이뤄보지 못한 기록이다.'''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칸은 2001, 2002년 골키퍼로써 [[발롱도르]] 최종후보 3인에 2년연속 선정되었으며, 2002년 FIFA 최우수 선수상에서는 호나우두에게 근소하게 밀린 2위를 차지했다. 또한 칸은 그의 커리어에서 무려 7회의 분데스리가 최우수 골키퍼로 선정되었으며, [[UEFA]] 최우수 골키퍼로도 4번이나 선정된데다 2회의 독일 올해의 축구 선수를 수상하였다. 그리고 IFFHS(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 선정 최우수 골키퍼에 3회나 선정되었다. 칸은 07-08시즌 더블을 기록한 후 많은 바이에른 팬들의 눈물과 박수를 뒤로하고 38세의 나이로 은퇴했다. 은퇴 후 [[오스트리아]]에서 경영학을 공부했으며, 독일 공영방송 ZDF의 해설자로 활약하고 있다. * '''[[비셴테 리사라수]]''' 바스크계의 [[프랑스]] 출신 풀백으로,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을 평정했던 바이에른과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레 블뢰 군단]]의 전설적인 레프트백. [[호베르투 카를로스]]와 세계 최고의 레프트백자리를 양분했던 그는 지롱댕 보르도에서 커리어를 시작해 1996 UEFA컵 결승전에서 보르도 소속으로 바이에른에게 완패하긴 했으나, 8강에서는 [[AC 밀란]]을 격침시키는 등 이 대회를 통해서 명성을 떨치며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1997년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해 8시즌 반 동안 174경기에 출장해 6회의 분데스리가 우승, 5회의 DFB-포칼 우승, 1회의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달성했으며, 이 시기 레 블뢰에서도 [[1998 프랑스 월드컵]]과 [[유로 2000]]에서 조국 프랑스를 우승으로 이끌기도 했다. 특히 2000년대 초부터 가동되었던 바이에른과 프랑스 국가대표에서의 양쪽 풀백 듀오였던 리사라수-사뇰 라인은 당대 최강의 사이드 수비라인으로 평가받았다. 2004년 여름 잠시 마르세유로 떠났으나 감독과의 불화로 2005년 1월 곧바로 바이에른으로 복귀했고, 그 후 한 시즌을 더 뛰며 2005-06 시즌에도 더블을 달성하고 명예롭게 은퇴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